회복불능 간경화 완치이야기

회복 불능의 간경화 완치 체험수기

                                                                      글 : 최 0 0

[ 병의 시작, 병은 뛰어서 오지 않는다. ]

하늘마을 힐링센터에서 새생명을 다시찾은 나지만 시작의 말을 떼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간경화 되기까지의 과정? 병이 시작되었을 때의 갈등? 아니면 단순히 놀라운 치유의 역사? 많은 고민을 했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나에게나 이글을 읽는 분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될거라는 생각에 비교적 자세히 경험을 기록하고자 한다.

내 주변의 누구도 나의 불행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릴때부터 불행한 가정 환경과 불화로 마음의 고통의 불길이 거세었고 오랜시간 방황하게 했다.

하지만 늘 좋은 사람이 되고자했고 모두가 좋은것이 내가 좋은것이라고 그게 맞는거라며 어느정도는 맞추고 스스로를 달래가며 살아왔다. 그러나 자신을 속여왔던 거짓이 진실이 되는 일은 없었다.
어느 순간 누르고 모른척해왔던 내 안의 삶의 모든 문제들이 터져나왔다. 여러가지 정신과적 진단명과 더불어 심각한 신체적 이상과 함께.
십년이상 지속된 심각한 불면에 대한 진단은 물론 우울증, 공황, 분노조절장애.. 그 뒤로는 폭풍과도같은 4년을 지내는동안 나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았으며 정신과에서 처방받는 약들은 만성이 되며 늘어만 가고 식습관도 엉망인 생활을 하며 지냈다. 일하는 내내 계속해서 느껴지는 쌓여가는 피로, 별거아닌 일에도 너무 놀라서 주저앉는일도 많아지며 신체, 정신적 무기력감은 점점 더 커져갔고 저녁에는 손과 발이 퉁퉁 부어올랐으며 나아지는 감이 없었다. 결국 휴직을 하고 집에서 쉬던 중 계속해서 상태는 나빠졌고 식욕이 전혀 없어서 거의 전폐 하다시피하며 누워지냈다. (어리석게도 그게 다 우울증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누워있어도 구토감이 들며 현기증이 나던 어느날 밤, 그 뒤로 기억은 없다.

[회복불능의 간경화 진단. 이어지는 고통의 날들]

자신을 관리하지 못한 죄송한 마음에 자세히 묻진 못했지만 쇼크상태로 구급차에 실려가서 병원에 15일정도 입원했고 나는 그 15일간 동안의 기억이 흐리다. 그나마 남은 기억의 편린들.. 간호사분, 다른날은 의사분이 와서 어깨를 흔들며 당신의 말이 들리냐며 흔들어 깨우며 눈앞에 펜을 흔들고, 링겔 갈아끼우며 이미 양쪽손은 혈관을 못찾게 되어서 다리나 허벅지 안쪽으로 해야겠다는말들을 묻는 순간의 기억들. 그런 시간들을 합쳐서 3시간정도 밖에 기억할수 없다. 그 동안 내내 헛소리, 사람을 전혀 못 알아보고 어쩌다 깨어있어도 눈만 끔뻑대고 밤에는 호흡곤란으로 헉헉대다가 괴로워하면서 침대스테인리스 난간을 탕탕 치며 발작을 할때에는 무언가 약을 링겔안에 넣고나면 죽은듯한 수면을 취하고.. 그 뒤 다시 앞의 일들을 반복했다고 한다.
퇴원권고? 전원 권유 후에 퇴원 짐을 싸고 나는 처음 의사분의 말을 들었는데.. 그 결과는 간경변, 흔히들 알고있는 간경화이다. (전반적으로 기억이 적어서 확실한 일들만 적기로..) 게다가 70%이상이 굳어버린 상태라고 했다. 호흡장애가 왔을때 아마도 뇌의 세포가 많이 죽었을거라며 가족분들을 기억을 못해도 이해하시고 그것에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도했다. 나는 다 듣고있었지만 완전히 남의 얘기처럼,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흘러나갔다. 마치 내가 마네킹같은 느낌이었다. 또 한동안은 회복할수있는 기간을 두시고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시라고도 했다. 기억력에도 영향을 끼쳤다니.. 심각하다고 하니.. 죽는가, 사는가의 본인인 나를 두고 보호자에게 설명을 하는데 참 남 얘기같다 싶었다. 기억나는대로 써 보자면 변형을 일으킨 세포는 정상적인 간의 능력으로 회복이 어려우니 남은 30%를 평생 잘 관리하며 써야 한다고 했다. 겉은 젊지만 체력은 마치 60대와 같을거라고도 했다. 과도한 운동이나 피로한 일들은 하면 안된다고도 했다.
한창 써야하는 젊은 나이에 이 모든것을 다 하지말라하니 절망스러웠다. 그 외에도 붓기로 살집있어 보이는 몸이었지만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였고 횡문근융해증(몸의 근육이 녹아 체액으로 흘러 나와 장기를 손상시키는 병이었다.) 이라는 진단도 함께였다. 다른 병원으로의 전원을 권유받으며 퇴원하시라는 말을 뒤로 하고 집으로 와서 일주일 정도를 지냈다. 물 외엔 먹을수도, 먹고 싶지도 않았으며 전혀 기력이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려 가구를 잡고 심호흡을 하며 이를 악 다물고 제대로 서기까지 20분이 걸렸다. 걷는것은 엄두가 나질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잠든 밤 나는 움직이려 애썼다. 어둔 방에서 불을 켜려 애쓰는 나의 모습은 두려움에서 벗어나기위한 발악이었다. 모두가 잠들고 세상이 조용할때에 난 그런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누워있다가 다신 못 걷게되면 어쩌지?’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불에 데인 듯 상체를 일으키고 불을 켜는 스위치를 향해서 다리를 주먹으로 때려가며 일어나려 애쓰는것이다. 참 정말 밤이 길었다. 식사시간은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밥 공기의 반도 못되는 양의 죽을 두시간이 넘도록 먹지 못하는 내가 죄스러웠고 밤에 화장실에 가려해도 다리에 힘이 안들어가 일어나기위해 애쓰는동안 혹여나 실수를 할까 물 한잔 편히 못 마시고 천장을 보며 우는 잠 못드는 밤 들이 이어졌다. 내가 내 삶을 보자니 고인 흙탕물에 빠진 동전을 보는 듯 했다. 건지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만 버릴까 싶은 생각도 들고 언뜻 언뜻 보이는 반짝임이 희망같아 자꾸 건져내고 싶기도하고…… 하룻밤에도 열 두번은 변하는 마음이지만 결국 난 실의에 빠져있었다.

[매일이 새로워지는 경험, 기적같은 치유의 시작]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야반도주하듯 짐을 바리바리 싸기 시작했다. 이불까지 챙기시기에 뭐하는 건가 싶으면서도 아무런 관심이 생기지 않아 그저 쳐다보고만 있었다. 날 부축하며 데리고 나와서 차에 태우는데도 어디가는지가 궁금하지 않았다. 말 없이 한참을 달려 도착한 산 속의 어딘가.. 그렇게 난 자연 치유와 진정한 삶을 만나게 되었다.

그 당시 내가 바라는것은 아무것도 없었기에 할 수 있었던 행동은 단하나였다. 단지 나 하나만을 위해 자신의 직장과 생활을 올스탑한 엄마가 원하는대로 하는 것. 처음은 그랬다. 상담을 하고 강의와 예배에 참석하며 듣다보니, 점점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원장님께 묻고 배우며 이미 자연치유를 생활로 받아들이신 분들의 말씀도 듣고.. 그 결과, 내가 느낀 자연치유의 바탕은 현대인의 삶과는 아주 달랐다. 끊임없이 모자른것들을 채워넣으라고 강조, 강요하는 지금. 그 반대로 자연치유의 기본은 비우는 것, 최소화의 법칙이었다. 어떠한것을 채워넣음으로써 낫게하는것이 아닌, 비움으로써 몸의 역할을 제대로 하게끔 자리를 내어주는것. 몸은 그리 하게끔 참 잘 만들어져있다는 것을 내 스스로 너무 간과하며 살아왔다는것을 느꼈고 바로 과일식을 시작했다. 3일, 5일, 일주일, 열흘, 보름.. 15일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했는가는 자신의 몸에게 물어보는게 가장 빨랐다. 눈에 띄게 좋아지는 몸과 늘 안개낀듯했던 머리가 맑아지는 날들에 더 의욕이 나서 과일식을 계속해도 되겠느냐 하는 상담후에 지속했던 것. 그리고 같은 마음의 사람들과 함께 예배에 참석하며 끝나고 나면 서로 공감한 부분에 대해 말도 나누며.. 상처난 곳을 찾아 약을 바르고 마음의 독을 빼내며 지내자니, 어느덧 마음의 불이 사그라 들기 시작했다. 사실 난 정신과의 약이 떨어져가는게 보이면 불안할 정도의 약 의존증이었는데 한번 그냥 자볼까, 한번 하루 지내볼까. 하는 마음이 피어났다. ‘절대 임의적으로 중단하시면 안됩니다. 큰일납니다.’ 하는 의사의 말에 더이상 따르지않고 하루아침에 단칼에 끊어버린 약. 그것의 금단증세로 몇일은 밤낮 옷과 이불이 다 축축하게 젖을정도의 식은땀을 흘리고 심한 두근거림과 극심한 우울감등.. 물론 몇날 몇일 불면의 날들로 약에 절여진 신체는 다시 약을 먹으라고, 먹으면 좋아질거라며 채근해댔지만, 난 그 고난들이 그간 내가 쌓아온 독을 뱉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3일 밤낮을 과일로 목을 축이며 끙끙 앓았다. 이것은 마치 마약중독자의 금단증세와 같았다. 밤새 기도했다, 식은땀이 주욱 흐를때마다 일어나서 무릎꿇고 기도했다. 가장 기본적인 기도를..
그리고 찾아온 아침의 날들은 너무도 맑고 새파랗던 하늘이었다. 심호흡을 하게 되며 고개를 올려 위를 봤는데 얼마만의 맑고 가뿐한 몸과 마음이던가, 밤낮 고통스러웠지만 단 그 몇일의 해독기간을 거쳐서. 나는 우울증과 불면증을 내 삶에서 걷어 버리는 시작의 돌을 놓을수가 있었다. 그 뒤로도 내 스스로는 참 자연스러웠기에 모르고, 간혹 만나는 누군가는 깜짝 놀라는 긍정적인 변화들로 나는 달라졌다.
예전 해가 뜨고 일어날때마다 오늘은 화장실에 몇시 몇분에 갈까, 정하고 각오를 다지고 일어나며 후들거리던 다리를 가진 내가 하루 두번씩 산에 올랐으며, 갈수록 체력이 붙어감에따라 세번도 가고.. 전혀 웃지않았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웃고 있는것을 느꼈다. 이 곳을 위해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며 봉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몸의 붓기가 빠져나가고 건강한 채식 식단을 먹고 지내면서 온몸에 풍족한 영양과 은은한 온기로 차오르는 생명력이 느껴졌다. 실제로 손톱과 발톱은 영양부족으로 울퉁불퉁하게 자라고 몇겹씩 들뜨며 껍질이 벗겨졌었는데 윤기가 나는 새로운 손발톱이 자라나며 영양실조로 거칠어서 사각거리던 피부는 부드러워졌고 무엇보다 간의 질환으로 물조차 마시기 싫었던 내가 사람들과 어울려 웃으며 산을 타고 내려왔을때 입에 침이 돌며 밥이 먹고 싶어서 ‘엄마 나 배고파’ 라는 말을 하니 정말 기뻐하며 환하게 웃던 그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불치의 세포는 없다. 완벽하게 재생된 간]

참 스스로봐도 신기해서 전반적으로 검사하고나서 후에 결과를 보러 가는데 그 떨리는 마음은 공포에 가까웠다. 30%라도 아직 잘 남아있었으면.. 제발.. 하는.. 그렇지만 의사분의 반응은 놀라울정도였다, 나의 상태로 전원을 권유받은 사람들은 다시 못본다고 그래서 내가 정말 안타까웠다고. 하지만, 나는? 단 한치의 거짓도 없이 간염을 앓았던 살짝의 흉자국만 남아있을 뿐, 변형된 세포가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되어서 100% 정상인의 간과 같고, 심지어 간수치는 평균보다 월등히 좋았다. 그리고 쇼크가 와서 190대였던 혈압도 정상. 신장의 염증 또한 전혀 이상없으며 .위험하다했던 수준의 면역력도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다 했다.
..멍했다. 무슨일이 벌어진건가. 바뀐 세포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했다. 내가 본 결과도 분명히 그랬다. 더군다나 완전히 딱딱히 굳은게 70%고, 그 이상 조금 올라간 세포는 그럭저럭 6% 정도라했다. 다시 물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했더니 안믿기시죠? 저도 그렇습니다. 의사가 이런말하면 안되는데 신기하네요. 여기 CT보시면서 설명드릴게요 하면서 싱글벙글.

담당의께서 하시는 말씀은 ‘00씨처럼 좋아져서 오시면 하루 열두번 뒤로 넘어가도 좋습니다! 해드린것은 없습니다만 그렇게 퇴원하신 이후로 너무 마음이 안좋았습니다. 정말 기쁘네요. 축하드려요. 새 삶이네요.’

…정말 꿈같은 이야기, 로또맞은것보다 최고인 이야기, 어떻게 이야기 해야할까요. 이 모든 일들을, 세상말처럼 꿈같고, 기적인 일이 나에게 일어났던 것, 이 모든것이 가능하게 해주신 하늘마을의 목사님 내외분과, 이곳에서 함께 삶을 나눈 모든 이들과 옳고 밝은 길로의 빛을 비춰주신 하나님께 모든 기쁨을 돌리며 앞으로도 계속될 저의 삶에서 늘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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